[대표 소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설립자 리차드 보아스 박사
1988년, 그의 가족은 한국에서 여자 아이를 입양하였습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입양한 딸을 키우며 보아스 박사는 국제입양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2005년 입양재단을 설립하여 국제입양을 원하는 미국의 가정에 재정적 지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입양에 대한 그의 관점은 2006년 10월 한국을 방문하여 미혼의 임신한 여성들이 모두 아이를 낳기도 전에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을 목격한 이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원해서 아이를 포기하는 여성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혼모들이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경제적으로 지원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압력에 의해 그래야만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터의 엄마도 이들 중 한 명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입양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그것은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설립하게 되는 하나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미혼의 임신 여성 중 70 퍼센트가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1퍼센트에 불과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한국아이들의 해외입양은 한결같아 왔습니다.
한국의 국제입양은 1980년대 중반에 한 해 8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해외, 대부분 미국으로 입양이 되며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리고 보아스 박사와 그의 가족은 이러한 흐름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이후로 입양 수는 조금씩 줄어들어, 1991년 현재 약 2000명의 한국 아이들이 매해 해외입양으로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보아스 박사는 기금을 조성하여 미혼모관련 단체들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미혼모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더 많은 지원을 하는 사회가 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정계, 학계, 그리고 비영리 단체들과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문화와 관습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미국 내 입양커뮤니티에 이러한 문제를 알리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코네티컷 지역사회 내에서도 자선사업에 참여하고 관련 활동들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네티컷 노르워크 (Norwlk)에 있는 뉴워크 병원에 입원한 종양환자를 돕는 기금을 조성하였고, 코네티컷 브랜포드 (Branford)에 있는 코네티컷 호스피스에 페이펀드 (Fay Fund)도 조성하였습니다. 또한 코네티컷 웨스트포트의 차터 오크 챌린지 (Charter Oak Challenge) 재단 이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보아스 박사는 코넬대학교에서 학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인턴은 뉴욕 부룩클린의 마이모니디스 (Maimonides) 메디칼 센터에서, 레지던트는 뉴욕 부룩클린의 노스 쇼어 (North Shore) 대학 병원과 마운트 시나이 (Mountain Sinai) 메디컬 센터에서 했습니다 (1982). 마운트 시나이 메디컬 센터에서는 치료녹내장 연구지원을 받아 녹내장을 치료하는데 있어 레이저사용에 관한 혁신적 연구결과를 냈습니다.
현재 보아스 박사는 코네티컷에서 아내와 두 명의 아이 그리고 입양한 딸과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