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e Stories
[제60차 여성정책포럼] 미혼모의 현실과 자립 지원 방안
2010. 2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발표글 "미혼모들이 경험한 입양상담 서비스" 에 실린 사례입니다.
인터뷰 대상자 : 입양 보내려 했다 되찾아 온 어머니들
사례3 : 현재거주지 - 인천시 | 입양상담시점 - 임신9개월 | 출산전후 거주지 - 시설 | 출산연월 - 2008.05
3.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버틴 10개월
지방에서 자라고 철부지였던 저는 한 가정의 장녀로 자라 대학이라는 곳을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수도권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가 처음으로 혼자서 무언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저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첫 직상에서 만난 남자친구에게 저도 모르게 많이 의지하며 기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5일이 지나서야 임신 6개월이라는 가슴 떨리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저에게 이렇게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찾아갔지만 그로부터는 끔찍한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저에 대한 비난과 이미 헤어진 것이니 혼자서 알아서 해라, 병원을 알아보라는 이야기들뿐 그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 고민하자 어렵게 병원을 찾아 수술할 수 있는지 알아보니 병원에서는 아이가 많이 자랐다며 키우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아이를 없애겠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장녀인 제가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씀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께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고, 동생들 보기 부끄러웠습니다. 우선은 이 사실을 숨기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침저녁으로 아르바이트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워질수록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 하는 것이 무리가 되었고, 행여 나온 배를 의심 받을까봐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온 종일 서서 일 해야 하는 것이 뼈저리게 눈물나고 힘들었습니다.
2008년 2월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부터는 혼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이를 낳으면 어디서 지내야 하는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사람이 누울 만한 좁은 공간의 고시텔에서 지냈기 때문에 집도 없었고, 아르바이트로는 돈도 모이지 않았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되자 저는 입양이라는 나쁜 생각을 하게 됐었습니다. 아이 아빠와는 가까운 곳에서 지내면서 아이아빠가 마음을 돌리기를 애원하며 기다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저는 입양이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2월경 만삭이 된 상태에서 인터넷을 통해 한 입양기관을 알게 되어 상담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전화기를 통해서 너무나 상냥한 복지사의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양을 생각중이라고 하자 상대편에서는 입양상담을 친절히 해주면서 직접 방문해볼 것을 권하면서, 방문할 때는 등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서류를 가져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전화 상담을 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2008년 3월 3일 입양기관을 찾았습니다. 30분가량의 입양상담이 끝나자 사회복지사는 친권포기각서와 입양동의서를 내밀며 사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인지라 작성을 거부하자 그럼 나중에 해도 상관없다며, 시설에 입소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삭인 저는 불안한 상태라 그런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거부하자 또 다시 저를 안심시키며 시설에 있는 엄마들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진통이 오면 혼자서 힘들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분만 촉진제를 맞고 예정일보다 먼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산부인과를 소개해 주면서 모든 진료, 출산, 입원비용을 입양기관에서 내주겠다고 제안하며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임신 사실을 안 이후 고립되어 지내다가 저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처음 만났기에 위로는 되었지만,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 3월 19일 저는 입양기관이 제안한 대로 예정일보다 앞 당겨 분만하기로 마음먹고 병원을 향해 나섰습니다. 병원에 가기 직전 입양기관에 들렀는데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를 앞에 놓고 서명하기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담당 복지사는 [아이를 보내기로 한] 마음이 바뀌면 얘기하라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저는 서류를 쓰고 나서 병원으로 가 분만촉진제를 맞고 그날 오후 늦게 여자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다음날 복지사는 아이를 데리러 왔습니다. 이때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아이아빠를 보자 복지사는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를 작성하고 서명할 것을 권했습니다. 복지사는 아이아빠에게 “아이 엄마가 입양을 원하니 사인만 하면 된다”며 서류를 건넸고 아이아빠는 제대로 서류내용을 읽어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서류에 사인하게 되었고 서류와 함께 아이는 그렇게 제 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08년 3월 24일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저는 도저히 제 아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원 직후 입양기관을 찾아가 입양결정을 취소하고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지사는 이미 서류작성이 끝난 일이므로 안된다고 거절하고 당시 임시보호소에 있던 아이를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출산 직후 몸이 회복되지 않아 허리와 온 몸이 아팠습니다.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로 거의 매일 입양기관을 찾아가 애원하여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2008년 4월 16일 양부모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저와 아이 아빠는 다음날 함께 입양기관을 찾아가 아이를 돌려달라고 거듭 요청하였고 복지사는 저희와 양부모의 경제력과 양육여건을 비교하면서 어느 가정에서 아이가 자라는 게 낫겠느냐며 입양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입양을 계속 미루면 출산 후 5~6개월이 지나서 아이에게 고아호적이 생기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가 입양을 가든 안가든 호적에 올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아이를 데려가서 호적에 등록시킬 때는 평생 사생아 호적밖에는 되지 않는다면서 서둘러 결정을 내리라 종용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입양을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저희 아이를 입양하려던 양부모는 다른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복지사의 태도는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했습니다.
2008년 5월 1일 저는 울고 불며 복지사에게 제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위탁모에게 아이를 잠깐 맡겨놓고 돈을 모아서 데리러 오는 방법은 안 되겠냐고 물어보니 복지사는 위탁모는 입양할 아이만 봐주기에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알아보니, 어떤 한 시설에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고 하여 그 기관에 아이를 맡겨 놓고 돈을 벌어놓은 후에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계획을 입양기관에 알리며 아이를 돌려달라고 하자 그 기관은 장애아만 돌봐 주는 곳이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뜻을 굽히지 않고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자 복지사는 태도를 바꾸어 출산 및 입양비용과 그동안 아이의 위탁비용(하루 2만 원씩)을 지불하고 아이를 데려가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아이를 데려가려면 아이 아빠와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양가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양가부모님을 모셔와 동의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복지사에게는 그러한 조건을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저와 아이아빠는 아이의 입양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동의한 지 일주일만인 2008년 5월 13일 아이는 저희를 떠나 양부모에게 보내졌습니다.
입양상담동안 상담사는 내내 저의 무능력함과 양부모의 부유함을 비교하면서 어느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행복이겠는지 생각해 보라며 저를 위축시키기 바빴습니다. 그 당시엔 누가 보아도 양부모는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고 저는 그렇지 못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상담의 내용은 이런 저런 말로 제가 아이를 포기시키려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되찾는데 필요한 조건은 제가 충족시키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들은 아이아빠와 원만한 관계가 아니면 충족시키기 불가능한 것들만 제시할 뿐이었습니다.
아이를 양부모에게 떠나보낸 직후 저는 인터넷에서 아이를 입양 보낸 이들이 모인 카페를 접하게 됐고 이곳에서 전에 몰랐던 많은 정보에 접하게 됐었습니다. 한 미혼모 복지시설에서는 출산 후 일 년이 지나도록 입양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미혼모를 위해 입양을 보류하고 있다는 사연, 미혼모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복지시설이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고 복지사가 말한 ‘고아 호적’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입양기관을 찾은 미혼모들 중 상당수가 입양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정보와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서둘러 입양 결정을 내려야 했다는 사실도 접하였습니다. 이즈음 아이아빠도 아이를 키울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아이아빠는 아이를 입양 보낸 뒤 아이와 아이엄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세 사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되찾아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와 저는 2008년 7월 18일 입양 기관을 다시 찾아 아이를 되찾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지만 입양기관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절차상 [입양에] 아무런 하자가 없고, 양부모에 대한 정보는 입양기관으로서 비밀 준수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전달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아빠와 저는 보건복지가족부에 탄원을 올리기도 하고 많은 분들에게 저희 이야기를 알리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입양기관과 오랫동안 싸우며 다른 한편으로는 설득하려고 노력한 끝에 결국 저희 아이는 입양된 지 10개월 만인 2009년 3월 말경 저희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되찾은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지만, 10개월 동안 저희 아이를 애지중지 키워주신 양부모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었습니다.
입양기관은 자신의 잘못된 상담으로 인하여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가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애초에 아이를 입양 보낼 생각을 한 친부모가 잘못 된 것이 아니냐며 저희를 비난하기에 바빴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 상담을 받을 당시 제게 자상하게 이해와 위로의 말을 건넸던 분들은, 입양 가기 전에는 양육을 포기시키고, 입양 간 후에는 아이를 되찾으려는 것을 포기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친부모가 키우려는 것에 대해 복지사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 현실이 저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아이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그분들은 왜 아이가 친부모 손에서 자라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