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비혼모, 입양과 젠더법" (2011년 5월 27일)에서 발표되었으며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것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에 관한 문의가 있을 경우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로 연락주세요. 02-734-5007, kumsn@kums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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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입양관련법 및 정책의 변화


에블린 로빈슨 Evelyn Robinson
작가, 호주 입양후 지원서비스 교육전담


서문

  현재 입양으로 알려진 것과 유사한 ‘어린이 양육에 관한 협정’은 수 백 년 동안 여러 국가에 존재해왔다.  20세기에, 호주와 같은 국가에서 입양은 아이가 한 가정에서 다른 가정으로 합법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이전하는 것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많은 호주인들은 국내외 입양율이 미국이나 영국 같은 국가들보다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진보의 중요한 지표로 간주한다.

  20세기 말엽까지, 호주에서 한부모가 된다는 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사회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비난받기 쉬운 이들 부모들은 대개 미혼모들인데, 자신의 아이들을 양육할 만큼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은 입양을 통해 좀 더 유능하다고 여겨지는 양부모들에게 옮겨졌으며, 이들 양부모는 대개 아이가 없고 불임이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부부들로서, 결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지원을 받지 못한 엄마들은 당시 편협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졌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양육지원과 마찬가지로 실제 전무했다.  입양은 모든 이, 특히 어린이들에게 득이 되는 최선책으로써 장려되었다.  당시 호주에서 입양은 부와 빈곤, 유능과 무능, 권력과 무능에 대한 문제였다.

  20세기 들어 호주에서는 입양 건수가 꾸준히 늘어 1960년대 및 1970년대 초반에 가장 많았다.  입양 건수는 1972년에 감소하기 시작했다.  1973년에 두 건의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혼모자 대책위원회(NCSMC)가 설립되어 연방정부에서는 혼인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한부모들에게 미망인 연금이 지급되도록 했다.  이 때 부터 호주 내 입양 건수는 급속히 줄어들었고 미혼모들에 대한 종전의 차별은 종식되었다.  이제 호주 내 모든 부모들은 연방정부의 연금수령 자격 면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1971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는 거의 천 만 건의 입양이 이루어졌다.  2010년, 호주에서 태어난 아기 두 명이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입양되었다. 이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생모 또는 생부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었던 경우였다.  이러한 경향은 호주 전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1988년 입양에 관한 법률

  1960년대 호주에서 너무도 많은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때, 입양으로 인한 생이별로 인해 생모들과 아이들이 겪게 되는 부정적인 장기적 폐해를 보여주는 믿을만한 연구가 없었다.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엄마들은 입양의 경험을 뒤로한 채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 했다고 하며, 입양된 아이들은 불우한 삶에서 자신을 구출해 준 ‘입양’을 감사한 일로 여기도록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자, 1960년대에 입양되었던 어린이들이 성인기에 접어들었고, 일부 학술계에서 입양으로 인한 장기적 피해를 연구하는 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연구에서 입양으로 인한 가족 간의 이별이 주는 감정적 폐해는 사실상 매우 깊고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1982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아들레이드에서는 미혼모자 대책위원회(NCSMC)의 주최로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많은 엄마들이 참석했고, 그 후에 지원기구를 설립했다.  입양 지원 단체의 압력으로 인해, 호주 국내에 입양된 사람들은 1984년 빅토리아 주에서 출생증명서 원본을 최초로 받을 수 있었다.  이 회의가 있은 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입양 지원 단체는 주 정부가 입양법을 개정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서로 협력했다.

  1988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 입양법은 입양의 두 가지 양상을 공표했다.  이 입양법은 어린이 입양에 관한 정책과 시행, 그리고 입양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입양관련 정보공개가 관리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그간 이뤄진 학계의 연구와 입양 지원 단체들을 통해 이루어진 개인적인 보고들에 힘입어 설득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함으로써, 기존의 정책들이 입양관련 당사자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었으며, 변화의 필요성이 인식 되었다.  

  1988 입양법의 목표중 하나는 생모들이 입양을 강요받는 것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었는데,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강요받거나, 불법적으로 아이를 빼앗기는 일은 과거에 비일비재했다.  또한 이 입양법은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방식으로 어린이들이 자신의 가족에게서 불필요하게 분리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입양정보를 알 수 있게 함으로써, 이 법은 또한 입양으로 이미 생이별한 사람들이 겪어 온 감정적 피해에서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유사한 정책과 법안이 호주의 다른 주에서 적용되고 있다.


어린이 입양 관리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현행법상, 모자 관계만으로 가정이 구성되며 어린이는 더 이상 ‘적출’ 혹은 ‘사생아’로 분류되지 않는다.  출산 후에는 호주 영주권자로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성별이나 혼인여부에 상관없이, 연방정부로부터 양육비가 지급된다.  이 양육비는 자산조사 결과에 따라 지급되는 것으로, 1973년부터 시행되었으며 어린이가 국가 미래의 초석임을 호주 정부가 인지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정부는 아이의 양육을 보조하기 위해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한다.  만일 아이가 편모나 편부 밑에서 양육되는 경우에, 나머지 부모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재정적으로 적절한 기여를 하도록 기대된다. 

  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미혼모는 항상 아이의 생부의 이름을 밝히도록 하며, 의사결정과정에 생부를 포함하게끔 하는 시도도 있게 된다.  만일 생부의 이름이 출생증명서에 등록되거나 아이의 생부라는 법원의 인지가 있게 되면, 입양 전에 그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생부는 친자관계를 확립할 시간이 허용되며, 만일 아이를 양육하기 원하는 경우에는 양육할 권한도 가진다.  생모와 생부가 아이의 미래에 대해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에는 가정법원이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절차는 입양동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발생한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는 상업적이거나 종교적인 기반으로 운영되는 입양기관이 없다.   개인입양은 불법이며 모든 국내입양은 주 정부의 관련 부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상처받기 쉬운 가족들이 부당하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이 호주 내 모든 주에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법은 아이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는 아이가 14세가 될 때까지 입양 동의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출산 후 상담은 의무이며 그것도 입양동의가 있기 최소한 3일 전에 완료되어야 한다.  또한 이 때, 아이의 생모는 입양의 결과와 관련한 정보를 서면으로 받게 되어 있다.  입양동의서에 서명한 후에는 최소한 25일이라는 기한을 주어 취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기한은 14일까지 연장될 수는 있지만 앞당길 수는 없다.

  실제, 입양동의는 때때로 출산 후 7개월이 지날 때까지 완료되지 않는데, 이는 아이가 본래의 가정 내에서 양육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갖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런 아이들과 부모들의 삶에 놓인 장기적인 문제를 예방해 주는데, 입양이 이루어지면 이러한 장기적인 문제가 예외 없이 발생한다.   이 기간 동안 아이는 생모나 생부와 함께 지낼 수 있다.  부모의 동의 없이 아이가 양육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는 출산을 앞둔 미혼모와 입양을 고려하는 입양인들 간에 어떤 종류의 접촉도 없다.  동의 철회기한이 완료되고 나서야 정부의 해당 부서는 아이를 양육할 사람을 선정한다.  따라서 예비 입양인들은 그 때까지 아이와 어떤 형태로도 만날 수 없다.  입양이 결정되고 나면, 선정된 예비 입양자인 미혼모 사이에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미혼모가 이러한 만남을 요청할 때에만 가능하다.  

  만일 입양인이 원하고 생부 생모가 동의할 경우, 입양 부모는 아이의 출생 증명서를 새로 발급하는 대신 출생 증명서 원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수 있다.  이것은 입양 후, 한 서류에 생부모와 입양부모 모두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 서류는 아이의 합법적인 출생 증명서이다.  아이의 생모는 출생이 등록된 시점부터 출생 증명서 원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생부 또한 출생증명서에 이름이 올라있는 경우 발급가능하다.

  호주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혼인을 했든 안했든 엄마들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동시에, 입양은 점차적으로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위험에 처한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적절한 양육을 제공할, 보다 정직하고 아이 중심적인 수단으로 변모했다.


입양정보의 접근성

  1988년 입양법이 통과함으로써,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는, 필자가 보건대, 세계에서 그리고 호주에서 최초로 성인이 된 입양아와 생모, 특별한 경우에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입양 관련정보를 열람할 권한을 똑같이 부여한 주가 되었다.  호주 내 대부분의 주에서는 그때부터 이러한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관례를 따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입양에 관련된 사람들의 정보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이는 그러한 정보를 폐쇄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이고 그래야 입양아와 생모 모두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간주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련된 사람 모두가 입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오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1988년 이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 어릴 때 입양되었던 성인은 18세가 되면 자신의 출생증명서 원본 및 기타 입양관련 서류를 발급받을 합법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다.  출생증명서 원본에는 자신을 낳아준 생모와 생부의 이름과 입양당시의 주소지등 부모에 대한 세부정보가 담긴다.  이들은 입양부모와 생부모 양쪽의 동의가 있다면 18세가 되기 전에도 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입양된 아이의 생모 또한 입양아가 18세 성인이 되었을 때 갱신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을 법적 권한을 갖는다.  갱신된 출생증명서는 아이의 입양 후 이름과 입양부모의 이름, 그리고 입양당시의 주소지 등의 세부정보가 담긴다.

  이 서류들은 또한 생모의 다른 자녀들에게도 발급가능한데, 생모가 승인하는 경우나 사후에 가능하며, 성인이 된 입양아가 승인하거나 사후에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발급가능하다.  생부 또한 경우에 따라 아이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갖는다.

  1988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입양법이 통과한 것을 보면, 입양으로 이별을 겪었던 아이들과 엄마들이 서로의 정보에 접근함으로써 이점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주 정부가 인지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권리를 박탈당한 슬픔과 입양

  나는 입양으로 이별한 후에 겪게 되는 슬픔은 권리를 박탈당한데서 오는 아픔이라 믿는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회의 지지나, 대중의 연민 혹은 개방적으로 인지되지 못하는 어떤 상실감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가족과 사별을 하면, 이웃사촌들은 남은 가족 곁에 모여서 이들을 위로하고 지지하며, 슬픔을 겪는 동안 이들을 도와주는 절차가 있으며, 이들이 슬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를 입양시키기 위해 생모에게서 데려갈 때, 종종 수치심이 들게 되고 따라서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생모를 위한 사회적 지지나 대중적 인식은 거의 없으며, 따라서 생모에게는 슬픔을 표현할 기회조차 없게 된다.  대신, 아이를 잃어버린 일이 긍정적인 경험이며 아이에게 최선책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려는 노력만이 있게 된다.  따라서, 아이를 잃은 슬픔은, 다른 사람들이 이런 확신을 안겨줌에 따라 억압된다.

  많은 경우에, 입양된 아이들은 입양가족이 제공해 준 삶을 감사히 여기도록 기대 받는다.  이것은 입양아들이 생모와 생부를 비롯한 태생의 가족들을 잃은 슬픔이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태어난 환경과 다른 문화권이나 국가로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에는 언어와 문화적 연결성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살면서 겪는 다른 형태의 상실에 있어, 애도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으로 간주되는데, 이는 상실을 겪은 이들이 상실의 아픔을 삶속에 받아들이고 제 자리를 찾게 도와준다.  그러나 입양 후에 오는 슬픔은 종종 억눌리고 무시되기 때문에 이런 아픔은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묻힌 슬픔은, 입양 하고 나서 수년간이 지난 뒤에 느껴진다 해도, 인정하고 맞서는 것이 항상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입양 후 상담은 이러한 슬픔을 표현하도록 돕고 삶속에 수용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슬픔은 경험되고, 슬픔을 겪는 자는 좀 더 자신감과 내적인 평화 속에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  내 생각에 가족을 상봉하고자 하는 욕구는 생애 초기에 무시되었던 슬픔의 과정을 겪고 떨치고자 하는 욕구인데, 이는 입양으로 이별한 사람들이 겪는 상실감이 인정되지도 표현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애도와 재결합욕구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많은 경우, 입양으로 이별한 가족 간의 상봉욕구에 종종 수반되는 슬픔은 달갑지 않으며 상봉에 있어 설명하기 힘든 요소였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분노와 슬픔은 가족이 상봉할 때 흔히 일어나는 감정이지만, 애도 과정의 일부로써 인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슬픔을 느끼고 경험한 사람들은 가족 상봉을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기에 더 잘 준비되어 있다.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한 다 하더라도 입양으로 인한 슬픔을 관리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여전히 유익하다.

  호주에서 입양으로 인한 이별과 관련한 상실감과 슬픔은  법안이 개정되어 입양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지되었으며, 이러한 이슈들을 다루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서비스를 위해 주정부가 지원금을 제공해왔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는 주정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입양 후 지원서비스(PASS)가 있으며, 특별 상담과 지원, 입양 후 문제와 관련해서 교육을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또한 가족상봉 과정을 지원하며 입양 상실감을 다루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입양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오는 슬픔이 다른 종류의 슬픔과는 다르며, 특화된 서비스를 요한다는 것을 주정부가 인식했다는 것이다.  입양으로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생애 다양한 시점에서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1993년 어린이 보호법

  1973년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는 호주에서 여성관련 사회적 변화가 상당히 컸던 시기이다.  동등한 급여와 고용기회뿐 아니라, 피임과 낙태의 허용 및 연방정부의 재정적 지원 등은 여성의 권리를 강화시켰으며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했다.  또한 모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여성은 혼인여부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호주에서 양육 지원에 관한 한 미혼모와 기혼모간에 그 어떤 법적지위의 차별이 없다.  또한 혼인한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와 미혼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사이에도 차별이 없다.   모든 아이들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입양에 대한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가족 보존을 지지하는 사회를 창출해 냈다.  입양은 이제 가족파괴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간주되며 태생 가족으로부터 신체적으로 분리되는 것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분리되는 것 또한 포함된다. 수많은 입양 건이 현저히 감소된 것을 보면, 진정한 선택권이 주어질 때 대다수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와 이별하지 않고 직접 키우는 길을 선택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있어온 사회적 변화와 동시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변화된 인식 덕분에, 관계당국은 입양이 불우한 가족들에게 진정 적절한 결과였는지 아니었는지를 재검토하는 일에 좀 더 개방적이었다.  1993년 어린이 보호법이 통과함으로써,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 정부는 가족 보존과 불우 어린이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데 기꺼이 재원을 쏟을 것임을 분명히 했으며, 이는 진정으로 어린이 중심적인 처우가 될 것이다.  이 법안을 통해 정부는 어린이들이 독단적으로 교환되는 상품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어린이에게는  보호받아야 하는 법적 권리가 있다.  어린이들은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이들에게 돌봄 서비스와 보호를 제공하는 정책들은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진정으로 어린이 중심적이어야만 한다. 

  이 때 부터,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많은 진보가 있었고, 이 지역의 입양 건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나, 어린이 보호문제는 항상 복잡하며 어린이에게 최선의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지 보증해 줄만한 지속적인 정밀 조사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불우한 어린이를 위한 대안 양육

  친생부모와 함께 살기에 안전하지 못하다고 간주되는 어린이들은 호주에서 양육되며 해외로 보내지지 않는다.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어린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떠나 다른 환경에서 영구 후견인 제도 하에서 양육된다.  이것은 어린이의 정체성과 기존 가족관계의 실제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처우로, 어린이들이 입양으로 인한 가식과 거부감 없이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게 해 준다. 

  영구 후견인 제도 하에, 후견인들은 부모가 갖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갖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출생 증명서 원본을 그대로 유지한다.  또한 태생 가족범위에서 모든 법적 관계를 유지한다.  이것은 어린이가 새로운 거짓 신원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고, 형제자매나 친척, 조부모와 같은 태생 가족 구성원 모두와의 관계를 단절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태생 가족과 살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간주되는 어린이에게 이러한 방식의 양육은 상당히 유익하다.  이것은 진정으로 어린이에게 맞춰진 선택사안이며 어린이의 생득권과 계보 및 타고난 신원의 가치와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존중한 것이라 하겠다.


공식사죄

  20세기 초, 특히 세계 2차 대전 후에, 영국에서 기관의 보호를 받았던 어린이들이 어린이 이민 제도 하에 호주로 데려와졌다.  이들 어린이 중 일부는 가정에 일부는 시설에 보내졌다.  이러한 사태는 이 어린이들이 자신의 부모와 떨어져 연약하고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어린이 이민제도는 1967년에 종식되었다.

  정부의 동화정책 하에, 많은 호주 원주민 어린이들이 자신의 가족에게서 분리되었고 특히 20세기 초에 그러했다.  일부는 시설에서 양육되었고 일부는 비 원주민 가정에 입양되거나 위탁 양육 되었다.  이 어린이들은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비난받기 일쑤였다.  이 제도는 약 1970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저 ‘빼앗긴 세대’로 알려진 일 대 사건을 초래했다.

  어린이 보호 명목으로 태생 가족에게서 분리되었던 호주의 어린이들 일부는 시설에서 돌봐졌다.  이 일은 어린이들이 태생 부모와 살 경우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는 발상에서 일어났다.  이들 어린이들 다수는 학대받았고 불필요하게 가족과 이별해야 했으며, 지금은 ‘잊혀진 호주인들’로 알려져 있다.  이 제도 또한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종식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위험에 처한 어린이에게 어린이 중심적인 선택사항을 만들었고 불우한 가정에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대다수의 가족이별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장기적인 슬픔과 상실감이다.  이 상실감은 21세기 정부가 ‘영국 어린이 이주민 협회’, ‘잊혀진 호주인들’, ‘빼앗긴 세대’에 공식 사죄를 함으로써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사죄는 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이런 제도들은 애당초 해당 어린이들과 가족들에게 최선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사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행위가 가족 간 이별을 겪어야 했던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며, 지난 세기에 있었던 일이 오늘날 수용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상실감과 슬픔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집단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족 간의 이별을 겪은 각 어린이들과 많은 다른 이들 또한 영향을 받았고, 이 사건은  국가로서의 호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 정책들의 결과는 입증되었고 대중에게 알려졌으며, 정부의 공식 조사를 통해 결국 연방정부가 사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사죄한다고 과거지사가 변할 리는 만무하지만, 정부의 공식사죄는 국내외 관계자들의 주의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정책과 제도가 해롭고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었다. 


입양 사죄

  2010년 10월 19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 주시사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의회에 발의안을 제출했는데, 이 발의안에는 과거의 입양정책이 엄마의 복지와 아기의 복지 사이에 균형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러한 과거 입양정책과 관행으로 불리한 처우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진실되게 그리고 명백하게 사죄할 것을 담고 있었다.  주지사는, 과거 특히 194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이뤄진 입양과 관련한 일부 과정들이, 이를테면 출산 후 아기를 생모에게서 데려간 일은 장기적인 괴로움과 고통을 야기했으며, 정부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많은 미혼모들이 감정적으로 가장 쉽게 상처 받는 시기에 입양에 동의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아이의 출산과 더불어 발생한 사건들이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끊임없는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주지사는 일부 미혼모들에게 이런 사태는 극심한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일부는 그 후 몇 십 년 동안 극심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를 대신하여 관련 엄마들과 어린이, 각각의 입양가족들에게 거리낌 없이 사죄하였다.  과거의 정책과 관행은 이들에게 최선책이 아니었다.

  주지사는 이런 정책과 관행이 과거 정부시절 있었으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죄가 있기 까지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에게 살아있어 준 것과 과거 정책을 견딜 용기를 가진데 대해 갈채를 보냈다.  그는 한 번의 사죄로 그 모든 폐해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당사자들의 치유과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의회가 연민을 갖고 인식을 전환할 것을 당부했다.  

  주지사는 또한 입양아에 대해 말하면서 생모들이 생각 없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복지를 깊이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세기에 많은 미혼모들이 결과를 알지 못한 가운데 행동했으며 입양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동의를 한 것임을 인정했다.  이 발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어디에서도 없었던 최초의 사죄였으며, 과거 입양정책과 관행으로 인한 감정적 영향력을 널리 인식시킬 시발점이라고 본다.  주지사가 언급한 기간 이후 호주에서는 모성과 입양에 대한 태도가 엄청나게 변화하기는 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입양으로 인한 이별은 부모와 아기들에게 끊임없이 장기적인 슬픔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해외입양

  20세기 중반, 미혼모들은 흔히 학대받고 비난받았으며, 이로 인해 이들 중 다수가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재정지원과 더불어 이들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였는데, 이것은 호주와 일부 다른 국가에서 좀 더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부모에 이해 양육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다른 국가로부터 호주로 입양되어 오는 어린이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 명백해졌다.  이것은 국가 간 입양이, 문화적 식민주의의 위험성과 재정적 기부자와 입양이행 당사자 사이에 발생하는 착취 및 불편한 관계가 내재된 형태로써,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어린이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늘어났음을 암시했다.

  해외입양을 통해 어린이들은 자신의 가족과 언어, 문화, 사회, 고향, 문화유산으로부터 떨어져 전 세계에 흩어졌다.  이것은 아이들이 겪는 상실감과 아픔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를 해외로 입양 낸 엄마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안겨주며, 미래 세대를 잃어가는 이들의 사회와 국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형태로 이별한 엄마와 아이들에게 평생 동안의 문제가 되는 이런 사건은 매우 중요하다. 

  헤이그조약에 따르면, 해외입양은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양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거의 모든 국가에 불우한 어린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해외입양은 빈국과 부국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예외 없이 거의 일방적이다.  범지구적 규모에서 21세기 해외 입양은 여전히 부와 빈곤, 유능과 무능, 권력과 무능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가난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신이 되었기 때문에 입양이 이뤄진다; 예를 들면 아이가 미혼모들에게 태어난 경우이다.  호주와 다른 영어 사용국가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지난 반세기에 지대한 변화를 보였고 이런 변화는 다른 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입양으로 내몰리는 아기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호주와 다른 국가들은 엄마들이 무력해지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며 엄마와 아기가 불필요하게 생이별하는 것을 공모하는 것이다.  

  호주가 입지를 다지고 다른 국가들에 좋은 예를 보여줄 때가 왔다.  해외 입양을 종식시킬 즉각적인 계획이 호주에 의해 마련되기를 보고자 하는 호주인들이 많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문화전통의 보존을, 평등과 위엄을, 가족보존을 지지하게 된다.  많은 호주인들이 해외에서 호주로 입양된 어린이들에게 호주정부가 사죄하는 것을 보게 되어 뿌듯할 것이다.

  불우한 어린이들을 염려하는 한 사회로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정부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주장해야만 한다.  과거 입양정책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입양이 최선책이 아니었음을 고려한다면, 계속해서 부모와 가족, 문화유산, 문화, 언어, 고향으로부터 아이를 떼어 생소하기만 한 이국의 가족과 문화, 언어, 국가로 입양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

  다른 국가에서 호주로 입양된 어린이의 수는 지난 10년간 감소했으며 계속적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호주와 같은 나라가 종국에는 해외입양을 중지하고 좀 더 윤리적이고 어린이 중심적인 대안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론

  호주에서 입양 건수가 가장 높았던 시기에는, 입양으로 이별한 부모와 아이들이 장기적으로 겪는 영향에 대한 믿을만한 증거가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입양이 발생하도록 만든 법안은 실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책과 관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고 이것은 우리가 입양이 당사자들에게 장기적이고 복잡한 감정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들에 의해 쓰여 지거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면 이들 대다수가 수년간 가슴 깊숙이 슬픔을 간직했으며 이로 인해 자존감과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음은 명백하다.  또한, 마찬가지로 많은 입양아들이 비록 입양가족들에게 잘 돌봐지고 사랑 받았다 하더라도, 태생가족과 헤어짐으로 인해 장기적인 슬픔과 상실감으로 고통 받았음은 명백하다.

  입양의 장기적 영향이 감지되는 데는 수년이 걸렸으며, 당사자들이 그런 감정을 편하게 드러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호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가족 보존을 지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으며, 가족들과 안전하게 살 수 없었던 어린이들을 위해 보다 어린이 중심적인 조치들이 마련되었다.  가족보존 정책은 부모가 자신의 어린이들을 양육하도록 독려하고 지지하는 것으로써, 가족파괴를 양산했던 입양정책을 대체하고 있다.  또한 입양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결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지원책도 있다.

  호주에서 우리는 더 이상 원주민 어린이들을 자신의 부모와 지역사회에서 분리하여 비 원주민 가정에 위탁하지 않으며, 이런 일이 대규모로 있었던 지난 과거에 대해 사죄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미혼모들에게서 갓 태어난 어린이들을 틀에 박힌 듯 떼어내지 않는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는 지역 내에서 출생한 어린이들의 입양이 지난 40년 동안 연간 천 건에서 연간 한 두 건으로 현저히 감소했다. 

  21세기 호주에서, 국내입양은 거의 과거지사가 되었다.  그것은 진정 어린이 중심적인 대안책으로 대체되었다.  호주의 지역사회는 정체성과 생득권이 중요하며,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가 어린이들이 성인기에 도달할 때까지는 어린이들의 ‘후견인’임을 배웠다.  만일 부모가 부모역할에 자신이 없거나 어떤 면에서 무능하다고 간주되면, 이런 문제를 다루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성공적인 부모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다.  단지 이러한 부모역할에 있어서의 장애물이 극복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어린이는 후견인 제도 하에 놓이게 되며, 이것은 입양과는 달리, 즉 기만과 위조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아이의 태생 가족으로부터 영원히 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입양이 보다 어린이 중심적인 정책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는 시점까지 향상되리라 믿는다.  나의 목표는 호주가 세상에 좋은 예를 보여서 국내외 입양 모두 종지부를 찍는 것을 보는 것이며, 따라서 호주가 입양문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대신 해결책의 일부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