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차 여성정책포럼] 미혼모의 현실과 자립 지원 방안

2010. 2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발표글 "미혼모들이 경험한 입양상담 서비스" 에 실린 사례입니다. 

인터뷰 대상자 : 입양 보내려 했다 되찾아 온 어머니들


사례4 :  현재거주지 - 서울시    |   입양상담시점 - 임신8개월    |    출산전후 거주지 - 시설    |   출산연월 -  2009.02 




4. 큰 해일을 넘어서 우리 만나자. 


저는 2007년 해외근무 중 아이아빠를 만나 혼전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1개월만인 11월 중순경 바로 임신사실을 알게 된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아이 아빠가 자신의 부모님이 일찍 떠나셨기 때문에 제 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여기며 평생 모시고 살고 싶고, 부모님과 양가친지를 모시고 축하 속에 결혼을 하고, 아이 역시 교육시키기 좋은 선진국에서 기르자며 저를 설득하였고 그러한 약속의 말을 믿고 아이아빠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약속을 믿고 출산을 결정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이 아빠가 하는 사업은 전혀 성사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생활이나 기타의 부대비용 모두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혼전임신 때문에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며 임신중절수술을 받기를 강력하게 권유하였지만 당시 저는 아이아빠를 믿고 있었고 오래전부터 제 아이를 낳아 키우기를 갈망했기에 부모님의 뜻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매일을 울면서 부모님이 설득되실 날만 기다렸습니다. 임신 4개월 208년 1월 초 아이아빠와 한번은 크게 싸우고 둘이서 함께 병원을 찾아간 적인 있었지만 두 사람 다 상담 전에 다시 발길을 돌려 아이를 멋지게 잘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화해하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5월말까지도 자신이 진행하던 일이 성사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님의 결혼허락을 받을 자신이 없었던 아이아빠는 1개월 이내에 일이 성사가 될 테니 멋지게 부모님 허락을 받고 아이와 함께 하자며 임신 7개월에 저에게 먼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아빠는 약속했던 아이출산일까지도 오지 않았고 출산진통 중 전화 한통과 문자4통으로 출산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사죄할 뿐이었습니다. 2008년 7월 18일 저는 자연분만을 시도했지만 혼자서 아이를 낳는다는 절망감과 슬픔에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하고 친언니의 수술동의를 얻어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고 그날 밤 9시 7분 예쁜 딸을 출산하였습니다. 


수술실 반신마취 상태에서 처음 눈앞에서 만난 제 딸은 전혀 낯설지 않고 임신 중 상상으로 그리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반갑고도 신기한 그 느낌은 어머니라는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첫 느낌을 기억한다며 간호사는 제 젖꼭지에 아기 입을 살짝 갖다 대도록 했을 때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너를 지켜줄께’하며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취 기운에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침상에 누워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출산일부터 아이아빠는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였습니다. 어렵게 지인들을 통하여 아이아빠와 연락이 닿았던 사람을 추적한 결과 출산 후 1개월 즈음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거짓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믿었던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앞에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이아빠가 아이와 저를 만나러 오기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아이를 위해 출산, 양육비용과 있을 거처를 마련해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아빠의 경제적 무능력과 잦은 잠적에 부모님은 아이가 있음에도 결혼을 반대하시고 아이를 입양하라고 저를 설득하였습니다. 얼마간의 사회경력이 있었던 저는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아이가 있으면 아이아빠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니 반드시 입양을 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매달 결정기한을 주시며 ‘아이를 위해서 빨리 결정해라’, ‘아이를 선택할 것이면 집을 나가 가족과 연락을 끊어라’ 하시며 입양을 권하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제가 아이를 키우겠다는 결정에 매일 우시면서 심한 우울증세를 보여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은 가중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 모르게 다른 가족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제 아이를 안아주거나 정을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의 강력한 반대뿐 아니라 출산비용과 생활비 충당에 쓰느라고 저축과 연금까지 모두 해지하고 은행잔고는 바닥이 나 아이 옷이나 분유를 사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나서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간의 구직활동에도 불구하고 면접조차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기를 보면 사랑스러웠지만 미안한 마음은 커져갔고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아이가 4개월째 되던 2008년 11월경 모처럼 마음에 드는 구인광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있던 저는 입사지원 신청을 위해서는 아이를 맡기고 서울에서 시험을 두 차례 거쳐야 했습니다. 가족들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독촉하였기에 입양 상담은 받아보고 결정하라고 설득하였습니다. 저는 양육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A 입양기관에 전화하여 상담하면서 가능하다면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으니 부산 지역에서 미혼 엄마가 아이를 맡길 곳이 있는 지 문의하였는데 상담자는 일을 하는 미혼엄마들이 아이를 맡길 보육 시설이 한 곳 있고 낮 시간 동안 운영하지만 현재 엄마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마저도 대기자가 많이 밀려 있어 신청한 후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저는 입양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고자 다른 입양기관에 전화 문의 하였고 2008년 11월 21일 제가 입양기관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자리의 지원 마감을 하루 남겨두고 마음이 급해진 저는 11월 18일 화요일 오후 12시 이번 구직 기회를 꼭 잡아 취업한 후 부모님을 설득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구직 기간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이미지가 좋아 보이고 버스로 한 번 만에 집으로 방문할 수 있는 입양 기관을 찾아 문의한 후 당일 방문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일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에 상담사가 저희 집을 방문하여 저와 아이아빠의 개인정보, 기호, 가족관계 및 현재의 상황에 대해 묻고 친권포기서 및 입양 동의서를 작성해 갔습니다. 상담과 서류 작성에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이에 추가하여 친권포기서 뒷면에 아이아빠 동의가 없으므로 이후 친권에 대해 양자 간 문제가 생길 경우 친모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자필 서명을 요구하였고 저는 요구에 따라 작성하였습니다. 이후 동사무소에서 들러 입양에 필요한 부속서류 발급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짧은 시간안에 이루어졌습니다. 


상담사는 상담 중 아이가 신생아가 아니라 4개월이 되었기 때문에 입양까지는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였고, 저는 빨리 직장을 구해 부모님을 설득하고 아이를 찾아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아기를 복지사에게 보낼 때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저에게 먼저 연락을 달라고 당부를 하고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아이를 맡긴 다음 날 입사지원서를 넣고서 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주말을 넘긴 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지 궁금하여 상담했던 사회복지사와 확인전화를 하였는데, 아이가 위탁가정에서 울지 않고 아주 잘 지내고 있으며 위탁가정에서 예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회복지사는 그날 제가 했던 아이 예방접종 내용을 확인하고 추가로 예방접종을 한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열흘 뒤인 2008년 11월 28일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저에게 휴대폰 문자로 아이가 그 전날 입양보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제 아이를 담당했던 복지사가 외근을 간 사이 입양상담 부부가 방문했는데 제 아이가 마음에 든다며 숙려기간 없이 아이를 보자마자 바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입양되었다는 소식을 갑자기 문자로 받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입양기관에 전화 연락을 하여 아이를 지금이라도 찾아오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제가 취업인 상태도 아니고 저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던 상담 복지사는 아이가 이미 입양이 되었기 때문에 법적인 절차가 모두 끝나 되돌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절차적으로 입양에 문제가 없다고 하며 아이엄마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며 반문하였습니다. 절망감에 빠진 상태에서 저는 입양기관을 상대로 부탁도 하고 항의도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해보았습니다.


현실이 절망스러웠지만 아이를 데려 오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입양 부모와 접촉을 하려고 아이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느냐고 묻자 담당 복지사는 마음 아파하면서도 지금은 입양부모가 그런 연락을 받으면 불편하고 걱정스러워하니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연락하여 물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2008년 12월 중순 경 입양 부모가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전하여 저는 몇 개의 사진을 골라 보내면서 저 역시 아이의 근황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양부모에게 전하였습니다. 2009년 1월초에 입양 부모로부터 아이의 사진 몇장을 전달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가족구성원 중 언니와 형부의 지지를 얻게 되어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올리기도 하고 비슷한 사정에 있는 다른 미혼모가 아이를 찾은 사례가 있는지 검색하며 지내다 다행히 예전에 일하던 직장에 재입사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1월 23일 저는 아이를 찾겠다는 결심을 공식화하기 위해 입양기관에 연락하게 된 배경과 상담과정을 진술한 메일을 담당복지사에게 보내고 전화로 아이를 찾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양부모에게 저의 뜻을 전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전화와 메일로 입양 기관에 연락하여 입양부모에게 보내는 저의 편지를 전달해달라는 요청을 하였지만 이들은 미혼모인 제 처지와 입양부모의 좋은 양육환경을 비교하며 제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보내지기 전에 아이엄마인 저에게 미리 연락을 달라고 했던 요청을 왜 입양기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느냐고 물었지만 입양절차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입양부모가 아이를 친자로 출생신고를 하였고 좋은 배경과 양육 환경을 가진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사랑받으며 잘 자라고 있으니 빨리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입양부모의 정보는 비밀이여서 알려줄 수 없으며 입양부모들이 연락받는 것을 거절한다고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입양기관과 한참을 싸우면서 아이의 얼굴을 정말 다시 볼 수 있을지 절박하고 가슴이 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얀 백사장에 친구와 함께 앉아있는데 눈앞에 너무 아름다운 푸른색의 거대한 해일이 백사장을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곁에 앉아 있던 친구는 겁을 내며 도망가자고 하였지만 저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커다란 물결이 저를 압도하였지만 전혀 두려움이나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평온하였습니다. 해일이 물러난 후 물에 젖은 흔적도 없고 오히려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꿈을 통해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저는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9년 2월 13일 입양기관과의 상담과정과 아이를 되찾기 위한 의지를 다시 담당복지사에게 메일로 보내고 상담사와의 내용을 녹음해가며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양부모에게 저의 의사를 전달하고 설득해달라고 입양기관에 요청했습니다. 입양상담 시에 아이가 입양가기 전에 엄마에게 연락을 달라고 부탁한 내용, 아이를 위탁하고자 입양서류를 쓰게 된 점 등에 대해서 글로 호소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상담복지사가 아닌 아이의 입양을 주선하신 입양기관 소장님과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2월 16일 입양기관 소장님으로부터 양부모에게 편지는 직접 전달을 하지 않았지만 전화로 조심스럽게 저의 상황과 의지를 전달하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입양부모가 더 이상의 연락을 원하지 않으며 아이가 성장하고 난 후 아이가 원한다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답변했다고 하였습니다. 입양기관 소장님을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입양 후 예정된 가정방문 때 입양부모에게 다시 한번 저의 뜻을 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2009년 2월 24일 입양기관 소장님이 아이를 입양한 가정으로 방문을 하게 되어 다시 제 입장과 의지를 설명하고 전달하였습니다. 가정방문에서 돌아온 소장님은 입양부모가 제가 아이아빠와 다시 합칠 가능성이나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혼자 키우겠다면 아이를 위해서 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2009년 2월 27일 입양기관 소장님에 따르면 어렵게 입양모의 마음은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나 입양부와 다른 가족의 동의를 얻기는 아직 어렵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9년 3월 5일 저의 마음과 의지를 헤아려 준 입양부모님이 아이를 되돌려 보내기고 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2009년 3월 6일 마침내 저는 아이를 다시 제 가슴으로 다시 안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되찾기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입양기관을 통해 양부모를 설득한 결과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입양 상담 중 엄마의 취업여부와 상관없이 보육이 가능한 시설이 있었거나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양육지원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었다면, 입양보내기 전 연락을 달라고 한 제 요청이 입양기관 복지사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면, 저와 만나 상담했던 사회복지사와 입양을 주선했던 담당자가 동일인이었다면 아이와 헤어지는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려는 엄마들을 위해 제공되는 양육지원서비스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주위의 압박에 눌린 상황에서 미혼엄마들이 서둘러 입양 보내는 어설픈 판단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녀의 입양은 엄마와 아기에는 일생일대의 중대한 사전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처럼 마음 아픈 경험이 다른 엄마들에게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