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을 맞아 우리 사회에서 오래 동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모성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 엄마가 됩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될 수 없었던 여성들의 박탈된 모성. 낙인과 차별 그리고 지원부재로 인해 빼앗긴 그 모성에 봄은 언제 올까요? 호주의 한 기사가 귀감이 되길 바라며 여러분과 나눕니다

 

 

 

기쁜 어머니 날,
누군가는 아이의 상실을 기억해야 하는 슬픈 날

 

2011년 5월 7일

 

Carol Nader

 

 
 

art_dlMOTHERS-420x0.jpg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비난을 받았던 린 킹혼 (Lyn Kinghorn) 여사에게 어머니 날은 그녀의 딸과 헤어져야 했던 지난 20년을 기억하게 하는 슬픈 날이다. (사진: Photo: Luis Enrique Ascui)

 

 


잠시 안아보고 헤어진 아기가 이젠 한 여성으로 성장하여 내 앞에 나타난다면 우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빼앗긴 지난 20년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건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라고 린 킹혼 여사는 말했다. 무슨 말을 할 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서로의 삶에 잃어버린 다른 한 쪽의 모습을 그려 넣으며 우리는 울 수 있을 것이다.  

 

킹혼 여사는 미혼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도록 강권되던 그런 시대를 살았다.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안이 되었지만, 호주에서 이러한 일들은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주로 일어났다. 사회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을 심하게 비난했다. 어머니 날인 내일은 이들의 상실을 슬퍼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호주 정부는 약 200건이 넘는 사례를 접수하였다. 어떤 여성은 고분고분해지도록 약물이 주입되었으며, 어떤 여성은 수유를 하지 못하도록 제지 당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볼 수 없었다. 위조된 입양동의 서명도 있었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들에게 의절당한 여성들도 있었다. 이들이 지금 정부로부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아이들은 성장했으나 여전히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다.   

 

상원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6월 말 발표를 할 예정이지만, 조사위원장인 녹색당 레이첼 시워트 (Rachel Siewert) 의원은 신중한 대응을 위해 발표일이 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정책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과를 요구하는 수많은 전화가 걸려왔으며, 위원회는 이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습니다”고 레이첼 의원은 말했다.    .

 

킹혼 여사는 1963년 16살의 나이로 임신했고 17살에 아이를 낳았다. 그녀와 남자 친구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킹혼 여사의 엄마는 그녀에게 나쁜 아이라고 비난했으며 남자친구를 내쳤다.

 

킹혼 여사는 딸을 낳았다. 일주일 후 간호사는 그녀를 아기와 떼어놓기 위해 병원 밖으로 끌어냈으며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킹혼 여사는 “난 아이와 헤어지기 싫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간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간호사는 “자 이제 집에 가서 착한 애가 되거라.”라고 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를 다시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저의 엄마는 만약 내가 입양에 동의하지 않으면, 내 딸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될 거라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일일 거라고 했어요.”

 

킹혼 여사는 누군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때의 고통스런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명의 아이를 낳았어도 한 번도 잃어버린 첫 아이를 잊은 적이 없다. “아이 사진을 볼 때마다 잃어버린 아이의 빈자리를 보게 됩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잃어버린 딸이 20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우연히 딸의 이름을 발견하였다 크리스틴 파머(Christine Farmer). 남편과 선거인 명부를 검색했으며 남편이 딸의 이름을 찾아내었다. 

첫 번째 만남은 긴장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난 여전히 화냥년이라고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을 믿고 있었고 내 딸은 내 존재에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 앞에서 제대로 숨을 쉬는데 한 10년은 걸린 거 같아요.”

 

재회가 늘 성공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관계회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시 만난 지 27년이 지났고,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린 이제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잃어버린 것에 억매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파머씨가 말했다.

 

오래 전 그녀를 낳아 준 친부는 ‘킹혼 부인’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와 귀걸이를 킹혼여사에게 주었고 그것을 자신의 딸에게 언제나 주고 싶어했다. 파머씨는 좋은 양부모에게 자랐으나 언제나 그들은 입양을 비밀로 하라고 말했었다. “자라면서 나는 그분들이 내 친부모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양부모와 닮지도 않은 자신을 보며 닮은 점들을 찾으려 했었다고 말했다.  

 

파머씨는 자신의 엄마 세대에 살았던 여성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파머씨는 자신의 아이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정부의 정책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존엄성을 옹호할 힘을 가진 그들의 도덕적 용기와 취약한 그들의 최대한 이익에 의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 http://bit.ly/iS8q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