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미혼모 이야기

 

tistory_com_20120208_142153.jpg

 

 

 

 

 

 

 

 

 

 

 

 

 

 

 

 

 

 

 

 

 

 

 

 

 

 

 

 

 

 

 

 

그녀들의 ''한 선택 -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

- 「싱글즈」와 「바람난 가족」의 미혼모 이야기

 

 

드라마와 영화에서 미혼모 문제는 시각을 달리한다. 드라마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래서 진부하고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를 제기한다. 반면 영화는 미혼모 문제를 여성의 주체성과 자율성이 반영된 선택의 문제로 다룬다.

미혼모가 등장하는 드라마 노란 손수건, 당신 곁으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을 중심으로 봤을 때, 네 가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첫째 미혼모가 되는 과정에서 여자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스스로 미혼모가 되기로 결정한다. 이때 그녀들은 한국적 현실에서 맞부딪히는 반발과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둘째, 미혼모의 옛 애인은 언제나 조건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처음에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강요한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으면, 후계자가 필요하게 된 남자가 아이의 장래 문제 등을 뒤늦게 거론하며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나타난다.

 

셋째, 미혼모는 항상 아들을 낳고, 옛 애인의 부인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딸을 낳는다. 미혼모는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옛 애인의 입장에서대를 이어야 한다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연결하여 아이를빼앗아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미혼모는 아이는 누구의 혈통도 아니고내가 낳은 혈육임을 강조하면서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준다. 또 아빠는 없다고 인식시키며 엄마 성을 따르게 하지만, 다시 갈등 속으로 빠져든다.

 

미혼모를 다루는 드라마의 큰 갈등 구조는, 아이의 양육권 문제와 미혼모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편견이다. 아이는 되찾았다가 빼앗기는 상황을 반복하며, 옛 애인의 부모나 부인이 등장하여부권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 드라마들이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는, 아이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미혼모에 대한 선정적인 시각이다. 즉 그녀들이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가부장적인 체제 속에서 고민하며 고통 받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은 다분히측은하고 동정적인시각에 머물러 있다. 또한 전통적 가치관을 들이밀면서 미혼모가 낳은아들을 빼앗아가려는 상황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내어 문제를 한 초점으로 종속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수정하거나 아이에 대해 고려를 하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지부진한 갈등이 부각될 따름이다. 또한 옛 애인의 현재 부인들이 이중인격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와 정신병자(당신 곁으로)로 그려져 아이 없는 여성은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반영하고 있다는 문제 역시 함께 제기된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들은 미혼모 문제와 양육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미혼모의 실제적 상황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미혼모를 사랑하는 남자를 등장시켜 현실 문제를 낭만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즉 노란 손수건에서 미혼모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한 남자에 의해 극복하게 되는 현실은 정당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는 다른 남자의 부권을 통해 가정을 꾸림으로써 극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싱글즈와 바람난 가족에서 여주인공들은 쿨한 대안으로미혼모 되기를 선언한다. 이번에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싱글즈의 동미와 바람난 가족의 호정은 소위 말하는쿨한여자이다. 그녀들은 남자에 의해 종속되는 현실 체제에 거부하며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둘째, 그녀들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에게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녀들의선택은 경쾌하고 정당하게 그려지며, 영화의 결론 부분을 장식한다. 즉 임신한 그녀들의 행보에 대해서 영화는 말하기를 삼가는 것이다.

 

먼저 싱글즈의 동미를 살펴보자. 동미는 부하직원을 성희롱하는 상사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고 과감히 회사를 때려치우는 여자다. 또한 동미의 입을 통해 그녀의동거관이 드러나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 동거해도 섹스 없이 할 수 있어. 같이 김치 담그면서. 너희는 동거하면 섹스 생각하고 하지. 난 섹스할 땐 따로 불러와서 해. 그리고 그거 옆에서 다 구경한 남자가 내 애 아버지야. 싫다면 나 혼자서 기르는 거고.”

 

동미는 주체적으로 남자와 섹스를 하고,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관계 규정도 하지 않는 능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에게 동거는 곧 섹스가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녀는 우연한 섹스로 인해 생긴 아이를 서슴없이 낳기로 결정한다. 마흔 명이 넘는 남자들과 섹스하는 것을 지켜본 정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이다. 당연히 그 관계에 사랑은 없고, 아이를 낳는 데 있어 정준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다. 마치 모계 사회의 주체적인 여성처럼 말이다. 그런데 동미는 아이를 낳으려고 결심하는 과정이 너무나 즉흥적으로 보인다. 그것이 그저 그녀의 캐릭터상의 성격이라고 보기에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즉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우기를 결심한 여자가 생각하고 고민하며, 맞부딪치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다. 그저착한 일 한 번 하지 뭐라는 식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거기에는내 아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다라는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다. 그것은낳아 기르고 싶다라는 동미의 입장만이 즉흥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훗날 태어나 자라게 될 아이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춘기 소녀들처럼 나난과 둘이 짝짜꿍이 맞아서너는 엄마해. 내가 아빠할게라는 모습은 현실과 괴리되어여성 판타지를 목격하는 기분마저 든다. 사랑과 아이, 자신의 미래까지 모두 거머쥐겠다는 야심만만한 여성을 폼나게 그리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저 막연한 낙관주의정말 막연한 낙관주의에 불과할지 모를!―로 영화를 결론 맺고 마는 것이다.

 

바람난 가족에서 미혼모 문제 역시 소재주의에 국한되어 있다. 특히 미혼모를 선택하는 것이 쿨하고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서는 그 현실적 맥락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결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씨네21의 남재일 칼럼에서는 “‘자발적 미혼모가 가부장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 온전한 삶을 이룬 여성의 상징처럼 유통되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길이밖에 없다는 자각은 페미니즘에 대한 각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뼈저린 확인이다. 그래서 진실로 자발적 미혼모를 꿈꾸는 여성에게 마돈다는 자신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새삼 환기시켜줄 뿐이다. 마돈나는 궁극적으로 문화적 희망이 아니라 경제적 절망의 환유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즉 싱글즈와 바람난 가족은 물질적 빈곤과 제도적 차별, 그리고 정서적 편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미혼모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다만쿨한 여성들의 모성 추구라는 위험천만한 주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새로운 이데올로기인 양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는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고, 제도적 보장이 없어도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다는 두 가지 연관성 없는 명제를 내놓았을 따름이다. 성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여성이 모성까지 지니고 있다니, 남성의 입장에서는 그 얼마나 편한 상황이겠는가.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이 자라는 아이가 부성의 문제를 제기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지금 이 순간’, 위험하지만 훌륭한 선택을 한 여성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 티스토리 혼란은 내 묘비명                                                                          20110908

원문보기: http://novelpia.tistory.com/m/post/view/id/164